ハヌカーの光(ヨハネ10:22-30)-2019.5.12.復活後第3主日 > 説教

본문 바로가기
説教

ハヌカーの光(ヨハネ10:22-30)-2019.5.12.復活後第3主日

페이지 정보

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5-15 23:37照会160회 댓글0건

본문

구약의 마지막 성서인 말라기에서 신약의 첫 성서인 마태복음까지는 한 페이지만 넘기면 됩니다.
旧約の最後の聖書であるマラキ書から新約の最初の聖書で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までは、1~2ページをめくるだけです。
그래서 많은 신자들은 구약 성서의 시대가 끝난 후 바로 신약 성서의 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それで、多くの信者たちは、旧約聖書の時代が終わってからすぐ、新約聖書の時代が始まったと思っているかもしれません。
하지만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 사이에는 약 400년 이상의 시간적인 틈이 있습니다.
しかし、旧約聖書と新約聖書の間は、約400年以上、時間的に離れています。
그리고 이 40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そしてこの400年くらいの時間の間に、ユダヤでは、いろいろなことが起こりました。
여러 왕조들이 등장했고, 두 세 차례나 유다를 지배하던 나라들이 바뀌었습니다.
続けて新しい王朝が登場し、ユダを支配していた国が何度も変わりました。
성서만 보아도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聖書だけを見ても、多くのことが起こったことが分かります。
구약 성서 시대 때에는 없었던 회당이나 바리새인, 사두개인등의 종파들이 생겨났고, 유대를 다스리고 있는 영주가 있었음에도 총독이 유대에 파견되어 있었습니다.
旧約聖書の時代にはなかった会堂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サドカイ派の人々などの宗派が生じて、ユダヤを治めていた領主がいたにもかかわらず、総督がユダヤに派遣されていました。
성전도 아름답게 재건축되어 있었습니다.
神殿も美しく再建されました。
이 모든 일들이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 시대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このすべてのことが、旧約聖書と新約聖書の時代の間に起こったことです。
그리고 오늘의 복음서 22절에 나오는 수전절도 그 때 생긴 절기입니다.
そして、今日の福音書22節に書かれた神殿奉献記念祭も、その時に生じた祝日です。

이 수전절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오늘의 복음서를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この神殿奉献記念祭について知らなければ、今日の福音書を理解することは難しいと思います。
왜 예수께서 수전절에 성전에 계셨는지,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라고 말했는지 수전절에 대해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なぜ、イエス様が神殿奉献記念祭に神殿に行かれたのか、なぜ、ユダヤ人たちはイエス様に、「いつまで、わたしたちに気をもませるのか」と言ったのか、 神殿奉献記念祭について知らなければ、理解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
일본에도 정월이나 오봉과 같은 명절이 있고 지역마다 여러 마쯔리가 있습니다.
日本にも正月やお盆などの祝日があり、地域ごとにいろいろな祭りがあります。
일본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그 날들이 무슨 날인지 알지만, 저와 같은 외국인은 누군가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 날에 대해 알 수가 없습니다.
日本人やその地域の人は、たいていその日が何の日かを知っていますが、私のような外国人は、誰かが説明してくれないと、その日について知ることができません。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대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수전절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同じように、私たちは、ユダヤ人ではないので、神殿奉献記念祭について分かりません。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에도 수전절에 대해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私たちが持っている聖書にも、神殿奉献記念祭については書かれていません。
그래서 수전절이 무슨 날인지 알아보는 것은 중요한 것이고, 이 수전절을 이해할 때 오늘의 복음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だから、神殿奉献記念祭がどんな日なのかを調べるのは大事なことであり、この神殿奉献記念祭のことを理解できたら、今日の福音書も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と思います。

수전절은 히브리어로 하누카라고 하고 합니다.
神殿奉献記念祭はハヌカーと言います。
이 절기는 종교의 자유를 찾은 것을 기념으로 생긴 절기로서 구약와 신약 성서 시대 사이에 생겼습니다.
この祭りは、宗教の自由を取り戻すことを記念して生まれた祝日として、旧約と新約聖書時代の間に生じました。
그리고 이 축일이 생길 당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そして、この祭りが生じたとき、イスラエルはシリアの支配を受けていました。
당시 시리아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자신이 다스리던 전 지역에 종교 통합을 명령합니다.
当時のシリアの王であったアンティオコスエピパネスは、自分が治めた全地域の宗教を一つにすることを命令します。
모두 그리스의 신인 제우스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皆がギリシャの神であるゼウスを信じろということでした。
그리고 모든 신전에 제우스의 상을 세웠습니다.
そして、すべての神殿にゼウス像を立てました。
재미있는 것은 풍문에 따르면 이 제우스 상은 안티오쿠스를 닮아 있었다고 합니다.
面白いことは、当時の噂によると、このゼウス像はアンティオコスに似ていたそうです。
자신을 신격화해서 정신적인 면도 지배하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自分を神格化して、精神的な面も支配しようとする下心があったのです。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신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エルサレムにあるユダヤの神殿も例外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유대교 제사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ユダヤ人にギリシャの神を信じろと強いてユダヤ教のいけにえを禁止しました。
유대신전을 장악하고 이교도의 신과 제우스를 숭배하는 제단을 세웠습니다.
ユダヤ神殿を奪って、異教徒の神たちとゼウスの祭壇を立てました。
이에 유대인들은 분노했습니다.
これでユダヤ人たちは怒りました。
그리고 약 3년 후 유대인들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そして、約3年後、ユダヤ人たちの反乱が起こりました。
주동자는 하스몬 가문의 제사장 마타티아스의 네 아들이었습니다.
火付け役は、ハスモンの家門の祭司マタティーアスの四人の息子でした。
이것을 ‘마카비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これを「マッカビ戦争」と呼びます。
그들은 시리아 군대와 맞서 싸웠고 승리하게 됩니다.
彼らはシリア軍と対抗して戦って、勝ちました。
다시 탈환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이교도 우상을 치우고 다시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했습니다.
再び奪い返したエルサレムの神殿の中にあった異教の偶像を倒して、神様に再び神殿を奉献しました。
그리고 8일간의 축제를 열어 승리의 기쁨을 나눴습니다.
そして、 八日間の祭りをし、勝利の喜びを分かち合いました。
성서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제 2의 성경이라 부르는 외경 마카베오 상 4장 5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聖書には、入っていませんが、第2の聖書と呼ばれるアポクリファのマカベオ上4章59節には、こ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유다와 그의 형제들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들은 매년 기슬레우 달 이십오일부터 팔 일간 기쁜 마음으로 제단 봉헌 축일을 지키기로 정하였다.”
「ユダとその兄弟たちとイスラエルの全会衆は、毎年キスレウ月25日から八日間、喜んで神殿奉献記念祭を守ることにした。」
이것이 수전절이라는 절기가 생긴 계기입니다.
これが神殿奉献記念祭という祝祭日が生じたきっかけです。

매년 수전절이 되면 유대교인들은 초에 불을 붙여 자신의 집 창가에 놓아둡니다.
毎年、神殿奉献記念祭になると、ユダヤ教徒たちはろうそくに火をつけて、自分の家の窓辺においておきます。
이것은 하누카의 기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これはハヌカーの奇跡を表わすことです。
마카비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신전의 성소안에 있는 메노라라는 촛대에 8일간 불을 붙여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려고 했습니다.
マッカビ戦争から勝利して帰ってきた人々は、神殿の聖所の中にあるメノラという燭台に8日間火をつけ、神様の臨在を象徴することにしました。
그런데 이 촛대에 사용하는 기름이 하루치 밖에는 없었습니다.
ところが、この燭台に使っている油が一日分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
하지만 하루치의 기름으로 촛대의 불은 8일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でも、この一日分の油で燭台の火は、8日間維持されました。
유대인들은 이 일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여겼고 매년 하누카가 되면 창가에 불 붙인 초를 놓아 하나님의 기적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ユダヤ人たちは、このことを、神の奇跡だと思い、毎年ハヌカーになると、窓辺に火をつけたろうそくを置いて、神の奇跡を記念しています。
이러한 축일인 하누카에 예수님은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このような祝日であるハヌカーに、イエス様は神殿に行かれました。
그리고 그 곳에서 몇 몇의 유대인들을 만납니다.
そしてその場で、何人かのユダヤ人たちと出会いました。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에워싸고 묻습니다.
ユダヤ人たちは、イエス様を取り囲んで尋ねます。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메시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いつまで、わたしたちに気をもませるのか。もしメシアなら、はっきりそう言いなさい。」
그들의 물음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 이유를 대변해 줍니다.
彼らの問いがイエス様が神殿に行かれる理由を代弁してくれると思います。

오늘의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생각해 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今日の箇所をよく理解するために、いくつか考えておく必要のあることがあります。
먼저 유대인이 받아들이고 있는 수전절 의미입니다.
まず、ユダヤ人が受け入れている神殿奉献記念祭の意味です。
그리고 이 수전절에 성전에 올라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라는 것과 예수께서 왜 수전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왜 요한은 이것을 기록하였는가? 입니다.
そして、この神殿奉献記念祭に神殿に行った人々がどのような人々なのかということと、イエス様は、なぜ神殿奉献記念祭に神殿に行かれたのかということと、それから、なぜヨハネはこれを記録したのかということです。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ユダヤ人たちはメシアを待っていました。
그들의 메시아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다릅니다.
彼らが待っていたメシアは、今、私たちが知っているイエス・キリストとは違います。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인 메시아입니다.
愛と平和を語るメシアではなく、政治的、軍事的なメシアです。
마치 마카비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자신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まるで、マッカビ戦争で勝利したように、自分たちに勝利をもたらすメシアを待っていました。
그리고 그들 앞에 예수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そして、彼らの前に、イエスという人物が登場します。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고치는 사람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死んだ人を生き返らせ、病気の人をいやす人。
この人に対して、ユダヤ人たちは、関心を持ち始めます。
특별히 나라의 힘과 권세에 열심이 있는 자들에게 예수라는 사람은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特に国の力と権力に強い関心がある者たちに、イエスという人は非常に魅力的な人物だったと思います。
하누카, 시리아의 왕과 싸워서 이기고 성전을 다시 봉헌한 그 날을 기념하러 성전에 올라온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랬을 것입니다.
ハヌカー、シリアの王と戦って勝ち、神殿を再び奉献したその日を記念するために神殿に上った人にとっては、もっとも魅力的な人だったでしょう。
그래서 성전에서 예수님과 만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라고 말합니다.
だから、神殿でイエス様と出会ったユダヤ人たちはイエス様に、「もしメシアなら、はっきりそう言いなさい」と言います。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군사적인 메시아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ユダヤ人の観点から見ると、軍事的なメシアを願っているのは、当たり前だと思います。
수 백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은 다른 나라로부터 지배나 간섭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数百年という長い時間の間、彼らは他の国からの支配や干渉を受けていました。
그리고 선조들의 왕정 시대의 기록과 선지자 시대의 기록, 다른 여러 나라의 지배자들을 보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되고 싶어했겠지요.
そして先祖の王政時代の記録と預言者の時代の記録、他の国の支配者たちを見ながら、自分たちもそのようになりたかったでしょう。
그래서 메시아를 통해 나라를 독립시키고, 지배 당하는 나라가 아니라 지배하는 나라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だからメシアを通して国を独立させ、支配される国ではなく、支配する国になりたかったと言っても間違いないでしょう。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지배자로서의 메시아였습니다.
彼らに必要な人は、支配者としてのメシアでした。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そのような目的のためにこの世に来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예수님의 가르침도 지배와 피지배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イエス様の教えも、支配と被支配についての教え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오해 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잡는 것에 있었습니다.
イエス様の教えは、人間の欲によって誤解された神様の言葉を正しくすることにありました。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더라도 유대인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だから、イエス様が何をおっしゃっても、ユダヤ人は自分たちの気に入らなければ受け入れなかったでしょう。
본문 25-26절의 말씀입니다.
本文25-26節の御言葉です。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イエスは答えられた。『わたしは言ったが、あなたたちは信じない。わたしが父の名によって行う業が、わたしについて証しをしている。しかし、あなたたちは信じない。わたしの羊ではないからである。』」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神様の言葉は真理です。
하지만 그 진리가 인간의 욕심에 의해 가리워져 있다면 진리의 말씀은 인간의 욕심만을 위한 빛이 되어 버립니다.
しかし、その真理が人間の欲によって隠されていたら、真理の言葉は、人間の欲のためだけに光になってしまいます。
즉 빛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すなわち、光の役割を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
하누카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ハヌカーの意味も同じです。
하나님의 은혜 안에 신앙을 되찾은 것이 하누카를 기념하는 목적입니다.
神様の恵みの中で信仰を取り戻したということがハヌカーを記念している目的です。
그러나 시리아라는 대국과 싸워 이긴 것에 하누카의 의미가 있다면, 성전에 빛을 비춘 것이 유대인들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하누카의 의미는 당치도 않은 것이 되겠지요.
しかし、シリアという大国と戦って勝ったことにハヌカーの意味があったら、神殿に光を照らしたことがユダヤ人の偉大さを示すことだったら、ハヌカーの意味はとんでもないことになるでしょう。
그래서 예수님은 하누카에 신전으로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ハヌカーのとき神殿に行かれたのだと思います。
빛으로서 진리를 밝히기 위해 신전으로 가신 것입니다.
光として真理を明らかにするために神殿に行かれたのです。
그리고 그 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질 영생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そして、その場で、イエス様は、ご自分に従っている人々に与えられる永遠の命について言われます。

자신의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빛을 볼 수 없습니다.
自分の欲を持って神様に従う者は、光を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
욕심에 의해 빛이 가리워졌기 때문입니다.
欲によって光が覆われてしまうからです。
요한복음 1장 5절에서도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ヨハネによる福音書1章5節でも「光は暗闇の中で輝いている。暗闇は光を理解しなか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
욕심은 욕심 이외의 것을 볼 수 없게 합니다.
欲は欲以外のものを見せないようにします。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어도, 예수님의 행하는 일을 보았어도, 신전의 유대인들은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の教えを聞いても、イエス様の行う業を見ても、神殿のユダヤ人たちは、理解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눈 앞에 메시아가 있었지만, 그들은 알아챌 수가 없었습니다.
目の前にメシアがいましたが、彼らは気づく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욕심이라는 어둠이 그들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欲という暗闇が彼らの目を隠したからです。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요.
私たちも同じでしょう。
욕심은 우리의 신앙을 좀먹을 것입니다.
欲は、私たちの信仰をむしばみます。
더 이상 진리를 볼 수 없게 할 것입니다.
それで、真理を見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するでしょう。

사랑하는 여러분.
愛する皆さん。
예수께서 수전절에 성전에 올라가신 이유, 그리고 이것을 요한이 자신의 복음서에 쓴 이유는 예수님이 어떤 메시아인지를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イエス様が神殿奉献記念祭に神殿に上った理由、そしてこれをヨハネが自分の福音書に書いた理由は、イエス様がどのようなメシアなのかを明らかに示すためのです。
예수님은 빛으로 이 곳에 오셨습니다.
イエス様は光としてこの世に来られました。
우리의 욕심을 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닙니다.
私たちの欲のために、この世に来られらのではありません。
우리만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私たちだけのためでもありません。
모든 사람을 위해, 또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 오셨습니다.
すべての人のために、また、すべて人の救いのために来られました。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そして、すべての人々のために復活なさいました。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光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様を賛美しましょう。
이 기쁜 소식이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この喜ばしいお知らせが皆さんと皆さんの隣人と共にありますように祈ります。アーメン。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教会情報

連絡先: 03-4285-6094(教会)
東京都大田区池上6-21-18
教会の牧師:李正雨(イゾンウ)
E-mail:ljwman94@naver.com(イゾンウ師)

教会の礼拝及びプログラムの時間

毎週日曜日、午前11時 主日礼拝
毎週土曜日、午前11時30分 聖書研究会
毎週土曜日、午前10時、12時 英語教室
毎週水曜日、韓国語教室(生徒募集中)

Copyright © ikegamichurc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