エマオでの教え(ルカ24:13-35)-2019.4.28.復活後第1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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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マオでの教え(ルカ24:13-35)-2019.4.28.復活後第1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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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5-02 14:11照会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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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 후 첫째 주입니다.
今日は復活後第1主日です。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は、弟子たちとお会いになりました。
그리고 자신이 부활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そして、ご自分が復活したことを現しました。
오늘 본문도 그 중 하나입니다.
今日の福音書もそのことの一つです。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라고 하는 마을로 가는 제자 두 명과 만나셨습니다.
イエス様は、エマオという村へ向かって歩いていた弟子二人と出会いました。
예수님과 만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예수께서 부활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イエス様と出会った彼らは、イエス様だとは気づかなかったのですが、イエス様の教えを通して、イエス様が復活なさったことが分かりました。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イエス様が死から復活なさいました。
本当に素晴らしいことですよね。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가 살아난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過去から今に至るまで、死んだ人が生き返ったことはなかったからです。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では、皆さんはこのことについてどう思いますか。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本当に素晴らしいことだと思っているでしょう。
그러나 제 질문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でも、私の質問はこ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
부활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復活ということを、皆さんは、どのようにお考えになっているかということです。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어떤 의미입니까?
皆さんにとっての復活は、どんな意味を持っていますか。

부활은 단순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사건만이 아닙니다.
復活は、単に死んだ者が生き返った事件だけではありません。
그리고 이를 믿는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そして、このことを信じている人も復活するということだけではないのだと思います。
물론 예수님의 부활은 대단한 것이고, 이를 믿는 사람들이 부활한다라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もちろん、イエス様の復活は素晴らしいことであり、これを信じている人も復活するということは素晴らしいことです。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난다라는 것만이 부활의 참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しかし、死から生き返るということだけが、復活の真の意味ではないと思います。
부활은 인간의 난제인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復活は、人間の難題である死と関連しています。
그래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더욱 부각됩니다.
だから、生き返るということが、さらに浮き彫りになっています。
하지만 다시 살아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활 사건에 들어가 있습니다.
しかし、生き返ることよりも大事なことが復活の事件に入っています。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それは福音です。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復活によって、私たちには、大きな変化が生じました。
그것은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과 우리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났다라는 것입니다.
それは、死がもはや私たちを支配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と、私たちの中で新たな創造が行われたということです。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창조는 우리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そして、このような新しい創造は、私たちに大きな変化をもたらします。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 위로와 새 희망을 줍니다.
死の恐れを乗り越えることができるのはもちろん、私たちに慰めと新しい希望を与えます。
죽음에 가려져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합니다.
死の力に隠されて、見えなかったものを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神様のご意志を知らせてくれます。
오늘 본문에서의 두 제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での二人の弟子たちにも同じでした。
그들은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었습니다.
彼らは絶望と落胆の中にいました。
그들은 엠마오를 향해 갈 때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彼らはエマオへ向かっていくとき、エルサレムで起こったことについて話し合いました。
그 이야기 가운데서는 단 하나의 희망도 없었습니다.
その話の中には、ただ一つの希望もありませんでした。
17절의 말씀입니다.
17節の御言葉です。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イエスは、『步きながら、やり取りしているその話は何のことですか』と言われた。二人は暗い顔をして立ち止まった。』」

그들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彼らが暗い顔をして立ち止まった理由は何でしょうか。
예수님의 죽음 때문이 아닙니까?
イエス様の死のためではないでしょうか。
그들은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彼らはイエス様に希望をかけていました。
예수님께서 당시의 암울한 사회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イエス様が当時の暗い社会を変えてくださると期待しました。
그러나 예수님은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기대는 날라가 버렸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殺され、彼らの期待は、はずれに終わってしまいました。
그 두 제자 중 글로바라는 제자의 말이 그들의 상황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その二人の弟子の中で、クレオパという弟子の言葉が、彼らの状況を示しています。
19~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9〜21節の言葉です。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ナザレのイエスのことです。この方は、神と民全体の前で、行いにも言葉にも力のある預言者でした。それなのに、わたしたちの祭司長たちや議員たちは、死刑にするため引き渡して、十字架につけてしまったのです。わたしたちは、あの方こそイスラエルを解放してくださると望みをかけていました。」

아마도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은 모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おそらくイエス様に従っていた人々は皆、このような考え方を持っていたと思います。
이 세상을 구원해 주실 분,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イスラエルを解放してくださる方。その方がイエス様でした。
그러나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고 그들의 희망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殺されてしまい、彼らの希望は水疱に帰しました。
하지만 그들은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でも、彼らは、すべてが完全に終わったとは思っていなかったようです。
그들의 동료들 중 어떤 여자들이 천사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彼らの仲間の婦人たちが天使たちに、イエス様の復活の知らせを聞いたからです。
그리고 동료 몇 명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고, 여자들의 말처럼 예수님의 유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そして、仲間の者の何人かが、イエス様のお墓に行きましたが、婦人の言葉のように、イエス様の遺体が見当たりませんでした。
이러한 소식은 그들에게 실낱과 같은 기대를 주었을 것입니다.
このような知らせは、彼らに仄かな期待を与えたでしょう。
혹시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아닐까?
もしかして、イエス様が復活なさったのではないか。
그러나 부활을 믿기에는 죽음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을 것입니다.
しかし、復活のことを信じるには、死の力はあまりにも強かったでしょう。
그래서 그들은 슬픈 빛을 띠고 있었던 것입니다.
だから彼らは、暗い顔をしていたのです。
우리는 어떻습니까?
私たちなら、どうしたと思いますか。
만일 우리가 그 두 명의 제자들이었다면 부활의 소식을 듣고 믿었을까요?
もし私たちが二人の弟子たちだったら、復活の知らせを聞いて信じられたでしょうか。
이 이야기를 들은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彼らの話を聞いたイエス様はこう言われます。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5-26절).”
「イエスは言われた。『ああ、物分かりが悪く、心が鈍く預言者たちの言ったことすべてを信じられない者たち、メシアはこういう苦しみを受けて、栄光に入るはずだったのではないか。』」

예수님은 그들이 아직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겼다고 생각합니다
イエス様は、彼らがまだ復活を信じられなっかたことを気の毒に思われたと思います。
그래서 성서 전반에 걸쳐서 자신에 대해 쓰여져 있는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だから、聖書全体にわたってご自分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ことを説明してくださいます。
여기서 성서 전반에 걸쳐서 설명해 주셨다라는 것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ここで、聖書全体にわたって説明してくださったということは、大きな意味を持っています。
예수님의 부활이 곧 하나님의 뜻이었다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イエス様の復活が神様のご意志だったということを証明してくれるからです。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셨습니다.
神様はこのすべてのことを司りました。
예수님에 대한 예언과 공적인 생애와 죽음까지.
イエス様についての預言と公的な生涯と死まで。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이끄셨고 예수님을 부활시키셨습니다.
神様はこのすべてのことを導き、イエス様を復活させました。
그리고 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을 죄와 죽음과 절망으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そして、このことによって、すべての人々を罪と死と絶望から解放させました。
참 복음이 우리의 생활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真の福音が、私たちの生活の中に入ってきたのです。
더 이상 죽음은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もはや死は、私たちを支配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しかし、弟子たちはこれが分かりませんでした。
그래서 예수님은 성서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깨닫게 하십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聖書の言葉を通して弟子たちを悟らせます。

성서의 말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聖書の言葉は、私たちが分からないことを悟らせてくれます。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福音が何なのかを教えてくれます。
특별히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복음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特に説教を通して、私たちは福音の意味が分かります。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통해 자신의 부활을 설명했고, 제자들은 부활에 대해 깨달아 갔습니다.
イエス様はこれらの言葉を通してご自分の復活を説明され、弟子たちは、復活について悟っていきました。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주셨을 때, 제자들은 눈이 밝아졌습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が弟子たちにパンを裂いてお渡しになったとき、弟子たちの目が開けました。
자신에게 부활에 대한 말씀을 가르쳐 준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自分たちに復活の言葉を教えてくださった人が、イエス様だと分かりました。
30~31절의 말씀입니다.
30〜31節の言葉です。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一緖に食事の席に着いたとき、イエスはパンを取り、賛美の祈りを唱え、パンを裂いてお渡しになった。すると、二人の目が開け、イエスだと分かったが、その姿は見えなくなった。」

예수님께서 풀어 주신 말씀이 제자들에게 부활에 대해서 깨달아가게 했다면, 예수님께서 나누어준 빵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イエス様が解かしてくださった言葉が、弟子たちに復活について悟らせたなら、イエス様が裂いてお渡しになったパンは、イエス様の復活を確信させました。
제 생각으로는 예수님께서 나누어 준 빵으로 인해 제자들의 눈이 밝아졌다 라기보다는 빵을 떼고 받는 모든 과정으로 인해 제자들은 상대가 예수님인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라고 생각합니다.
私の考えでは、イエス様がお渡しになったパンによって、弟子たちの目が開けたということよりは、パンを裂いてお渡しになって受けたすべての過程によって、弟子たちは相手がイエス様だということを確信することができたのだと思います。
왜냐하면 그들은 늘 예수님과 함께 말씀과 빵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彼らは、いつもイエス様と一緒に言葉とパンを分かち合っていたからです。
생활 속에서 몸에 익었던 것들이 부활을 확신하게 한 것입니다.
生活の中で身につけたことが、復活を確信させたのです。

우리도 매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을 통해 빵을 나누고 있습니다.
私たちも毎週イエス様の御言葉を聞いて、聖餐を通してパンを分けています。
매 주 하고 있는 것이기에 습관처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毎週行っていることなので、習慣のように感じられると思います。
그러나 이러한 몸에 익은 일들이 우리에게 부활을 일깨워주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しかし、このように身についたことが、私たちに復活を悟らせて、福音を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ます。
한 시간 가량의 예배이지만, 이 예배를 통해 우리는 새 창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一時間ほどの礼拝ですが、この礼拝を通して、私たちは、新しく創造されているのです。
그래서 매 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고, 부활의 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だから毎週、私たちは、イエス様の復活を経験しているのであり、復活の力を受けているのです。
가끔 우리는 엠마오 사건처럼 우리에게도 그러한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時々、私たちはエマオでのことのように、私たちにもこのような奇跡が起こ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를 바랍니다.
イエス様に直接出会ったらと思っています。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매 주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しかし、このようなことは、毎週、私たちにも起こっています。
말씀과 성만찬을 통해서 엠마오에서의 가르침이 매 주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言葉と聖餐を通して、エマオでの教えが毎週行われているのです。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죽음의 힘 앞에 무력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時には、私たちは死の力の前に無力であるように感じられることがあります。
하지만 이것을 믿으십시오.
しかし、このことを信じてください。
죽음은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死は私たちに何の力も発揮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이미 부활의 삶을 살고 있으며,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私たちは、イエス様によって、すでに復活の人生を生きており、決して死ぬことはありません。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復活は生き返ることだけではありません。
복음이고 위로이고 희망입니다.
福音であり、慰めであり、希望なのです。
이 놀라운 기쁨의 소식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この驚くべき喜ぶ知らせが皆さんといつも共にあ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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