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すべてが復活する(ヨハネ20:1-18)-2019.4.21.復活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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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4-25 01:27照会2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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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이스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ハッピーイースター。イエス様が復活なさいました。
기독교에서의 부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キリスト教での復活は、非常に大事なものです。
그래서 우리는 매년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だから、私たちは毎年、主の復活を記念するイースター礼拝をささげています。
그리고 매 주 일요일, 우리가 주일이라고 부르는 날에도 부활절의 의미는 들어가 있습니다.
そして毎週日曜日、私たちが主日と呼んでいる日にも、イースターの意味は入っています。
사순절을 계산할 때도 주일은 사순절에서 제외가 됩니다.
四旬節を計るときにも、主日は四旬節からはずれます。
왜냐하면 주일은 작은 부활절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主日は小さなイースターの形を持っているからです。
즉 우리는 매 주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있는 셈입니다.
すなわち、私たちは毎週、主の復活を記念しているわけです。

이렇게 부활이라는 것은 교회와 신자들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このように復活というものは、教会と信者にとって、大きな意味を持っています。
어떤 신학자는 부활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독교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ある神学者は、復活がなかったら、今のキリスト教はないと言っています。
저도 그 학자의 주장에 상당히 동의합니다.
私もその神学者の主張には、かなり同意しています。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였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이해하고 믿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イエス様の復活を通して散らばった弟子たちが戻って来て、イエス様のすべての言葉を理解し、信じ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그리고 이 부활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そして、この復活は、単に主が肉体の死から生き返ったことだけではありません。
죽음과 죄와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이긴 증거이고, 이러한 승리 아래서 우리는 구원받은 것입니다.
主が死と罪と悪魔の誘惑から勝った証拠であり、このような勝利の下で、私たちは救われたのです。
주님의 부활로 인해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라는 것입니다.
主の復活によって、救いはすでに私たちに与え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
그래서 우리는 죽음 이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だから、私たちは、死の後のことを心配しなくてもいいし、私たちが生きているこの世でも、救いの喜びを享受することができます。

오늘의 복음서는 주님의 부활을 현장에서 경험한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今日の福音書は、主の復活を現場で経験した人々の話です。
그들은 부활을 직접 경험했으며 주님의 부활로 인해 잃어버렸던 것들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彼らは復活を直接経験し、主の死によって一度失われてしまったことを主の復活によって回復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彼らはイエス様の死によって悲しんでいました。
그런 그들에게 더욱 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このような彼らに、さらに、良くないことが起こりました。
그것은 예수님의 유체가 사라졌다라는 것이었습니다.
それは、イエス様の遺体がいなくなったということでした。
이것을 맨 처음 확인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このことを最初に確認した人は、マグダラのマリアでした。
그녀는 이것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렸고,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서 예수님의 유체가 사라졌다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彼女はこれをペトロとヨハネに知らせ、彼らはイエス様のお墓からイエス様の遺体がいなくなったということを確認しました。
자신들이 따랐던 예수님이 죽임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유체까지도 사라졌습니다.
自分たちが従ったイエス様が殺されただけでなく、遺体までも消え去ったのです。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すべての希望は消え去ってしまいました。
한 가닥의 희망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一筋の希望も残っていないように見えました。
본문 10절에는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本文10節には「それから、この弟子たちは家に帰って行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家に帰っている弟子たちの心は、どうだったでしょうか。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彼らはどのように感じていたと思っていますか。
아마도 그들에게는 절망 밖에는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たぶん彼らには絶望しか残っていなかったでしょう。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すべてが終わったと思ったでしょう。
이러한 절망, 이것이 죽음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このような絶望、これこそが死が持っている力だと思います。
죽음은 우리 안에 희망이 사라지게 합니다.
死は私たちの希望を失わせます。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すべてが終わりだと思わせます。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합니다.
私たちのことを無力にし、すべてのことをあきらめさせます。

그러나 부활은 이 모든 것을 뒤집습니다.
しかし、復活は、このすべてをひっくり返します。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에 절망과 죽음의 힘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弟子たちが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に再び出会った時、逆に絶望と死の力のすべてが消え去ってしまいました。
다시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二度と再びそのように絶望して、家に帰っていくことはありません。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終わりではないからです。
새로운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新しい希望が生じたからです。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힘을 줍니다.
イエス様の復活は、私たちにも、このような力を与えてくださいます。
모든 것이 무력해지고, 끝이라고 생각되고, 죽음의 힘이 우리를 감쌀 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그러한 절망 가운데서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すべてが無力になり、終わりだと思われ、死の力が私たちを覆うとき、イエス様の復活は、私たちをこのような絶望から導き出します。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고 새 힘을 줄 것입니다.
私たちに希望を与え、新たな力を与えてくださいます。
더 이상 절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もはや絶望と共に家に帰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입니다.
すべてが新しく始まるでしょう。
절망으로부터의 구원!!
絶望からの救い。
이것이 부활의 힘입니다.
これが復活の力です。

본문 11절부터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本文11節からは、マグダラのマリアの話です。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돌아갔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ペトロとヨハネは、家に帰って行ってしまって、マリアは、イエス様のお墓の外に立って泣いていました。
마리아가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マリアがなぜ家に戻らなかったかは、よく分かりません。
아마도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에 무덤가에서라도 있었던 것이겠지요.
おそらくイエス様を見たいという心を持ってお墓にいたのだと思います。
하지만 죽음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しかし、死は、イエス様とマリアの仲を引き裂きました。
무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유체도 볼 수 없었습니다.
お墓の中には何もなく、マリアはイエス様の遺体も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죽음은 마리아에게 슬픔과 혼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死はマリアに悲しみと混乱をもたらしました。
그런데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ところが、特別なことが起こりました。
마리아가 다시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에 천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マリアが再びお墓の中を見ると、天使が見えたのです。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天使はマリアにこう言います。
13절의 말씀입니다.
13節の御言葉です。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天使たちが、『婦人よ、なぜ泣いているのか』と言うと、マリアは言った。『わたしの主が取り去られました。どこに置かれているのか、わたしには分かりません。』」

천사를 본다라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닙니다.
天使が見えたというのは、一般的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
마리아가 천사를 천사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아무도 없었던 무덤 안에 사람이 있다라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マリアが天使を天使として認識していなかったとしても、誰もいなかったお墓の中に人がいるということも不思議なことです。
그러나 마리아는 그 모든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しかし、マリアは、このすべての状況を認識しませんでした。
슬픔과 혼돈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悲しみと混乱の中にいたからです。
이 말을 하면서 마리아는 뒤를 돌아봅니다.
この言葉を言いながら、マリアは後ろを振り向きます。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そしてマリアは、イエス様が立っておられるのを見ました。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이라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しかし、それが、イエス様だということも分かりませんでした。
죽음은 우리들에게 슬픔과 혼돈을 가져다 줍니다.
死は私たちに悲しみと混乱をもたらします。
그래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それで、正しい判断を下すことができなくなります。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正しい認識ができなくなります。
마리아도 부활에 대해 예수님께 분명히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マリアも復活についてイエス様から明らかに教えられていたでしょう。
그리고 마리아는 천사와도 만났습니다.
そしてマリアは天使とも出会いました。
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しかし、すべてのことが分かりませんでした。
죽음이 동반하는 슬픔과 혼돈의 힘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死が伴う悲しみと混乱の力は、決して小さくなかったのです。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私たちも同じです。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죽음이 주는 혼돈에 얼마든지 빠질 수 있습니다.
信仰を持ってい生きていますが、死が与える混沌にいくらでも落ち込むことがあります。
마리아처럼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マリアのように、何も認識ができなくて、分からなくなることもあります。

그러나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しかし、復活を経験したら、すべてのことが変わるでしょう。
모든 혼돈 가운데서 빠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すべての混沌の中から抜け出るでしょう。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바른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何が真実なのか、何が正しいのかが分かるのです。
마리아도 그랬습니다.
マリアもそうでした。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을 때, 마리아는 슬픔과 혼돈 가운데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がマリアの名前を呼んだとき、マリアは、悲しみと混乱の中から抜け出ることができました。
16절의 말씀입니다.
16節の御言葉です。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イエスが、『マリア』と言われると、彼女は振り向いて、ヘブライ語で、『ラボニ』と言った。『先生』という意味である。」

부활은 우리를 슬픔과 혼돈 가운데서 구원할 것입니다.
復活は、私たちを悲しみと混乱の中から救うでしょう。
죽음으로 인해 가려져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死によって覆われていることを、はっきりと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ます。
마치 새 창조와도 같습니다.
まるで新しい創造と言ってもいいほどです。
하나님께서 혼돈 가운데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부활도 혼돈 가운데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할 것입니다.
神様が混沌の中からこの世界を創造されたように、復活も混沌の中から、私たちを新たに創造するのです。
그래서 모든 것을 알게 할 것이고, 인식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だから、すべてのことを知り、認識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ます。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私たちは、神様が造られたこの世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
지금 우리가 이 세상을 보는 것처럼 부활은 죽음이라는 혼돈에 가려진 것들을 확실히 보게 할 것입니다.
今、私たちがこの世を見ているように、復活は、死という混沌に隠されたことを明らかに見せてくれるのです。
그리고 우리도 모든 슬픔과 혼돈 가운데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そして私たちも、すべての悲しみと混乱の中から救われるでしょう。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자신의 부활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라고 하십니다.
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は、マリアに、ご自分の復活を他の弟子たちにも伝え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
17절의 말씀입니다.
17節の御言葉です。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니.”
「わたしの兄弟たちのところへ行って、こう言いなさい。『わたしの父であり、あなたがたの父である方、また、わたしの神であり、あなたがたの神である方のところへわたしは上る』と。」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 소식 안에 놀라운 은혜의 메시지를 넣으셨습니다.
イエス様は、ご自分の復活のお知らせの中に、驚くべき恵みのメッセージをお入れになりました。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わたしの父であり、あなたがたの父である方、また、わたしの神であり、あなたがたの神である方」という言葉です。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새롭게 정해진 것입니다.
イエス様の復活を通して、神様と人との関係が新たに定められたのです。
예수님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イエス様の父が私たちの父になり、イエス様の神が私たちの神になりました。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神様と私たちの関係が変わりました。
율법학자들과 제사장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하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律法学者たちと祭司たちが言っていた神様ではなく、イエス様がおっしゃった神様が、私たちの神様になったのです。
그리고 그 하나님을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そして、その神様を私たちは、父と呼ぶことになりました。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愛する皆さん。復活によってすべてのことが変わりました。
절망이 희망이 되었고, 슬픔과 혼돈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絶望が希望になり、悲しみと混乱は、もはや私たちを支配することができなくなりました。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부활한 것입니다.
神様と私たちの関係も変わりました。すべてが新たに復活したのです。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が復活なさいました。
그리고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この喜びのお知らせがいつも皆さんと共にありますように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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