泣いておられるイエス様(ルカ19:28、41-48)-2019.4.14.枝の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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泣いておられるイエス様(ルカ19:28、41-48)-2019.4.14.枝の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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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4-15 16:14照会3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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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머니는 기도를 많이 하십니다..
私の母は、よく祈ります。
제가 십대였을 때는 우시면서 기도한 적도 많으십니다.
私の十代の頃には、体を折って、激しく泣いていたことがあります。。
부모라면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있을 것입니다.
親なら子どもにかける期待があるでしょう。
저는 그 기대를 단 하나도 충족시키지 않았던 아들이었습니다.
しかし、私はその期待を一つも満たさない息子でした。
그래서 어머니는 저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우셨습니다.
だから母は、私のために祈りながら泣いたのです。
그리고 지금도 저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우시는 것 같습니다.
そして今も、私のために祈りながら、泣いているようです。
아마도 타지에 살고 있고, 잘 만날 수 없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たぶん私が日本に住んでいて、会う機会が少ないから余計そうなのだと思います。
목회가 쉽지 않다라는 것도 우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牧会が簡単ではないということも、泣いている理由の一つです。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昔も今も、母は子どもたちのために泣きながら、神様に祈っています。

모든 부모가 저의 어머니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すべての親が私の母と同じだと思います。
저도 아이들이 생기니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私も子供たちができてから、母の心が少しは理解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어머니의 눈물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母の涙は愛だと言えるでしょう。
초대 교회 교부인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初代教会の教父であるアウグスティヌスの母、モニカについて言い伝えの話が残っています。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이 마니교라는 이교의 종교에 빠져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슬퍼해서 암브로시우스라는 주교를 찾아가 상담합니다.
モニカは、息子アウグスティヌスがマニ教という異教の宗教に走り、乱れた生活をしていることを深く悲しみ、アンブロシウスという司教に相談します。
그러자 주교는 “괜찮습니다. 이런 눈물의 아들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라고 모니카를 격려해 돌려 보냅니다.
すると、司教は「大丈夫ですよ。このような涙の子が滅びるはずはありません」と言って、モニカを励まして帰しました。
이 말대로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부도덕하고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돌아옵니다.
その言葉の通り、アウグスティヌスは母の涙の祈りによって、不道徳と、誤った教えから立ち返りました。
누군가를 향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誰かに向かって涙を流すということは、真心から愛することだと思います。
그리고 하나님은 이 눈물을 가볍게 보시지 않습니다.
そして、神様はこの涙を軽くは思われないでしょう。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우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今日の福音書では、イエス様が泣いておられる場面が登場します。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성읍을 보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イエス様はエルサレムに近づき、都が見えたとき、都のために泣きました。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そしてこのように言われます。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42절).”
「もしこの日に、お前も平和への道をわきまえていたなら……。しかし今は、それがお前には見えない(42節)。」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고 평화의 길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イエス様はエルサレムを見て、平和への道をわきまえていないと言われます。
예수님께서 참 평화를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지만 예루살렘의 사람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イエス様は真の平和のために、エルサレムに入りますが、エルサレムの人々、特に、宗教指導者たちは、それが分からないからです。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의 의미입니다.
ここで面白いことは、エルサレムという地名の意味です。
예루라는 것은 성읍라는 의미이고 살렘이라는 것은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エルというのは、都という意味であり、サレムというのは、平和という意味です。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읍라고 불려졌지만 실상 평화가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エルサレムは平和の都と呼ばれましたが、実は平和が何なのかも、わきまえていなかったのです。
근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近代になっても同じですね。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エルサレムを巡って多くの戦争が起こり、今も起こっています。
서로가 자신의 성읍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상대를 죽이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お互いが自分の都だと主張しており、相手を殺すことも気にしません。
평화를 알지 못하고 평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평화의 성읍.
平和を知らず、平和を受け入れない平和の都。
예수님께서는 그 성읍을 보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イエス様はその都を見て涙を流されます。

그리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が涙を流されたもう一つの理由があります。
그것은 머지 않은 미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들 때문입니다.
それは遠くないうちに、エルサレムで起こることのためです。
43~44절의 말씀입니다.
43〜44節の言葉です。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라.”
「やがて時が来て、敵が周りに堡塁を築き、お前を取り巻いて四方から攻め寄せ、お前とそこにいるお前の子らを地にたたきつけ、お前の中の石を残らず崩してしまうだろう。それは、神の訪れてくださる時をわきまえなかったからである。」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지를 예언하신 것입니다.
この言葉は、イエス様がエルサレムがどの運命になるのかを預言なさったことです。
과거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한 번 무너졌습니다.
過去エルサレムはバビロンの侵略によって、一度崩れてしまいました。
그 때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そのとき、大勢の人が殺され、捕虜になってつかまえられて行きました。
성서는 그 원인을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보고 있습니다.
聖書は、その原因を、イスラエルの堕落だと言っています。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의 수많은 경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イスラエルは、預言者たちの多くの警告も神様の言葉も受け入れず、尊重もしませんでした。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예수님의 시대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そして時間が経って、イエス様の時代にも同じことが起こりました。
지난 주 설교 시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성전을 사유화했습니다.
先週の説教でも申し上げたように、イスラエルの指導者たちは、神殿を私有化しました。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했습니다.
神様のものを自分のもののように使いました。
성전에서 나오는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불렸고, 정치 세력과 결탁했습니다.
神殿に供えられるお金で、自分の腹を肥やして、政治勢力と結託しました。
그들에게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없었습니다.
彼らには隣人への愛はありませんでした。
예수님은 이것을 몇 번이고 지적하셨고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이라는 존재는 눈엣가시였을 것입니다.
イエス様はこのことを何度も指摘なさったから、彼らにとってはイエスという存在は、目の敵だったでしょう。
그래서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으로 가셨지만,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平和の王としてエルサレムに行かれましたが、エルサレムはイエス様を受け入れなかったのです。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イエス様はエルサレムのために泣かれました。
예루살렘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것을 사유화 했어도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습니다. 
エルサレムがご自分のことを受け入れなくても、神様のものを私有化しても、エルサレムを見て泣かれました。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들로 인해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そして、エルサレムで起こることを悲しまれました。
예루살렘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エルサレムのことを愛しておられたからです。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삽니다.
人々は自分の欲のために生きています。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過去にもそうだったし、今もそうです。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今、私たちが生きているこの社会を今一度考えてみてください。
그리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십시오.
そして私たち自身を振り返ってみてください。
이 사회도, 우리도 예수님 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この社会も、私たちも、正しいことよりは、自分自身のために生きていきます。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으며,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誰も神様の言葉を愛していません。
隣人のために自分を犠牲にしません。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을 보고 우셨습니다.
イエス様はこのような世界を見て泣かれました。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 세상을 위해 우셨습니다.
神様の言葉を尊重せず、恐れないこの世のために泣かれました。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이 세상과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まるで親が子供を愛するように、この世と私たちを愛されたのです。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そしてこの世に神様の言葉を教えてくださるために、神殿に入りました。
본문 45-46절의 말씀입니다.
本文45-46節の御言葉です。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それから、イエスは神殿の境内に入り、そこで商売をしていた人々を追い出し始めて、彼らに言われた。『こう書いてある。『わたしの家は、祈りの家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ころが、あなたたちはそれを強盗の巣にした。』」

예수님은 성전에서 큰 소동을 일으키십니다.
イエス様は神殿で大騒ぎを起こされました。
우리의 눈으로는 이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 짐작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私たちの目からみると、このことがどれくらいだったのか測れないと思います。
유대인에게 이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ユダヤ人たちにとってこのことは、想像もできないことでした。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彼らにとっては、神殿というところは、聖なる場所でした。
그러한 곳에서 소동을 일으켰다라는 것은 백성들로부터 화를 부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そのような場所で騒ぎを起こしたというのは、民に憎まれるかもしれないことでした。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このようなことをなさいました。
왜냐하면 예루살렘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エルサレムを愛しておられたからです。
사랑하셨기 때문에 성전의 바른 목적을 위해서 상인들을 내어 쫓으시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愛されたため、神殿の正しさのために、商人を追い出して、そこで、神様の言葉を教えられました。
47절의 말씀입니다.
47節の御言葉です。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每日、イエスは境内で敎えておられた。祭司長、律法学者、民の指導者たちは、イエスを殺そうと謀ったが、」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그 곳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イエス様はエルサレムとその地の人々のために、自分を犠牲にしたのです。

성전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神殿の目的は、お金を稼ぐことではありません。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성전을 돈을 버는 도구로 사용했고 그 돈으로 정치와 유착했습니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民の指導者たちは、神殿をお金を稼ぐ道具として使い、そのお金で政治と癒着しました。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すべてのことが自分自身のためのことでした。
이러한 백성의 지도자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このような民の指導者の姿が、私たちにも与える教訓があると思います。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神様の言葉よりも、自分のことをより大事に思っていること。
자신을 위해 거슬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
自分の気に入らない神様の言葉は受け入れないこと。
이러한 것은 우리의 신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このようなことは、私たちの信仰に全然役に立たないでしょう。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民の指導者たちがイエス様を殺そうと謀った理由は何でしょうか。
단지 소동 때문입니까?
ただ騒ぎのためでしょうか。
아니면 예수님의 소동으로 인해 자신들이 손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까?
それとも、イエス様の騒ぎによって、自分たちが損害を被る可能性があるからでしょうか。
우리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私たちもまったく受け入れにくいイエス様の言葉があると思います。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その理由は何でしょうか。
그 이유는 하나님과 내 자신만이 알 것입니다.
その理由は、神様と自分だけが分かるでしょう。

사랑하는 여러분.
愛する皆さん。
예수님은 평화의 성읍과 그 성읍의 성전을 보고 우셨습니다.
イエス様は、平和の都とその都の神殿のために泣かれました。
왜냐하면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彼らを愛されたからです。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와 이 사회를 보고 눈물을 흘리실지도 모릅니다.
今もイエス様は、私たちとこの社会のことを見て、涙を流しておられるかもしれません。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のことを愛され、この世も愛されるからです。
그리고 이 눈물은 막연하게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そして、この涙は、漠然と流す涙ではありません。
이 눈물로 인해 성전이 깨끗하게 된 것처럼 우리의 모든 죄도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この涙によって神殿がきれいになったように、私たちのこともきれいになるでしょう。
예수님의 눈물로 이 세상은 모든 타락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イエス様の涙によって、この世はすべて堕落から救われ、神様の言葉を尊重す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로 인해 어거스틴이 돌아온 것처럼, 예수님의 눈물로 인해 이 세상도 돌아올 것입니다. .
母モニカの涙の祈りによって、アウグスティヌスが立ち返ったように、イエス様の涙によって、この世も立ち返るはずです。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하십시다.
イエス様の涙を覚えてください。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와 우리 사회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イエス様の愛が私たちと私たちの社会に満ちるように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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